아이 메디투데이

이집트 북 페어


* 이집트 북페어

   나세르 시티 인터내셔널 센터 / 미단 타흐릴에서 택시로 10파운드

 

기가막힌 소식을 들었다. 이집트에서 책 박람회가 열리다니. 오페라에 이은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문명이 목말랐던 순간에 목을 축여주는 단비같은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 살짝 거짓말이지만 - 달려갔다.

 

   * 북페어 안내판

 

많은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설레이는 마음을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으랴.

택시에서 내리면서 생각만큼 거대한 건물에 흐뭇해하며 티켓 박스를 찾았다. 볼로냐에서는 얼마였더라, 몇 만원했던 것 같은데 그럼 2일권이나 3일권을 끊어야 하나. 안내판이나 가격표도 전혀 없는 티켓부스에 줄도 없이 무리를 지어 서서 티켓을 사서 나오는 사람에게 가격을 물어보았다.

 

한 순간에 기대를 무너트리는 가격은 1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70.

너무 저렴한 가격 때문에 실망했다는 것은 - 입장료가 저렴한 이유는 투자나 후원이 적절하게 이루어졌거나 혹은 투자나 후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텐데, 이 나라에서는 전자일 확률이 극히 희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어느 정도는 지식층이 올 거라는 기대도 순식간에 사라지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흐물흐물한 1파운드짜리 티켓을 들고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중앙에 자리잡은 공원처럼 보이는 멋드러진 풀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잠시 피크닉을 나온듯한 분위기였으나 주변 가득 굴러다니는 쓰레기들은 카이로 여느 거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공사가 덜 끝난 것인지 여기 저기 쌓여있는 모래와 나무들은 쓰레기 더미와 한데 어울려 실망감을 더 증폭시키고 있었다.

 

1관을 놓치고 처음으로 들어간 2, 아니 이런 식으로 말할 필요도 없겠다. 어차피 나머지 관들은 모두 똑같았으니. 외국어로 된 서적은 딱 한 관에서만 찾아 볼 수 있었고, 영어 교육 교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랍어로 된 책들이었다. 아마 각 출판사들이 자신들의 책을 들고 나와 앉아있는 것 뿐이리라. 두껍게 양장된 표지에 금박으로 쓰여있는 글씨와는 달리 내지는 말 그대로 A4 용지에 인쇄인지 복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책들이, 여전히 공사중인 것처럼 보이는 실내에 제대로 된 파티션도 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 1관 외의 모습

 

내가 아랍어를 읽을 수 없는 것은 신의 축복이다.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은 진정한 축복이다. 저 하얀 종이 한 장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혜택받은 사람인지 느낄 수 있다.

 

그 하얀 종이들이 진짜 A4 용지임을 확인하고 나자 다시는 책을 열어보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전혀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지만 그 까만 것들이 마치 벌레처럼 종이에 마구 뿌려진 흩뿌려져 균형없이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라니.

 

 

   *추리, 공포물로 보이는 책들

 

그렇게 모든 관들을 한 바퀴를 돌고 마지막으로 들어선 1관에는 전혀 다른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수트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둘러 앉아있는 세미나실을 바라보며 눈이 휘둥그래지는 내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아마도 나를 굉장히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인터내셔널 페어라는 것이 거지시말은 아니었음을 확인해 주듯 그리스, 러시아, 스페인, 터키, 이탈리아, 루마니아, 중국이 부스를 열고 있었다. 러시아 관에 막 들어섰을 때의 눈부심은 어떤 단어로도 표현 할 수 없을 것 같다.

활자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환한 빛이 서광처럼, 어두운 동굴에서 빛을 발견한 것처럼 순식간에 눈을 덮었다. 그 확고한 활자가, 역시나 읽을 수 없는 그 글자들은! 말 그대로 러시아다웠다. 영어로 된 책은 한 권도 없는 오만함까지 맘에 들었다.

 

 

   * 러시아 부스 / 사진이 매우 미약함 

 

내가 만약 이 곳에서 세종대왕의 활자를 보았다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눈이 더 이상 상처입기 전에 전시장을 나왔다. 언젠가 이집트에서 열리는 책 박람회가 자리를 잡고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도 있다면, 그 날이 왔을 때 오늘의 기억은 다 잊혀졌기를 바라며.

 

2008/05/29 19:34 2008/05/2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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